발품

큰 터 집 돌배나무

꼼방울 2024. 1. 10. 21:23

이 한 장의 사진에 있는 돌배나무를  찾아 나섰다.
어떤 분의  블로그에
특정지역만 언급된 친구의  고향집을
휴가기간에 들렸다가  찍었다는
여러 장의 사진  중에 돌배나무 사진 한 장.
크기도 상당히 커 보이고, 수형도 준수해
보이고 나무가 건강해 보인다.
충분히 찾아볼  가치가 있어  보였다.
찾아야지...
꼭..

찾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돌배나무는  예상했던  크기를
훨씬 넘었다.
가슴높이 둘레가 3.5~3.6m 정도 되는 우리나라 돌배나무
최상위에 속하는 거목이었다.


마침 밭에서 일을 끝내신  주인내외분께
인사를 드리며,
돌배나무를 보러 왔다는 내 말에, 어떻게 이렇게  외진  곳에   돌배나무가  있는 걸
알고 찾아왔냐며 음료를 주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돌배나무는 이곳에서 수 백 년 전에   
터를 이루신             김해김 씨
선대의 어르신께서 집 앞에  심으셨던
나무였다.
예전에 이곳은  이 근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대단한 고택이 있었던
자리였지만   6 ~25  전쟁 때 
지주들은 숙청의 대상였던 
인민군의 화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고 하셨다.

6~25 전쟁 때 행해진    "인민재판"은
오로지 처벌이나, 처형을 목적으로
일제부역자, 공무원, 지주들을
처단하던 북한 공산당의 수단이었다.

후에 전쟁이 끝나고 동네사람들께서
다시 지금의 집을 지어 주었다고..
동네사람들  이라 해야  
대부분 일가분들이었단다.



말씀을 이어가시던 아주머님은
여러 해 전의  봄날에, 밭일을  끝내고
돌아서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하늘을 보는데 마침  돌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이었다고 하신다.

휘영청 떠오른 달빛에 하얗게 핀
돌배나무 꽃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셨다며,

그날

아주머님은 시인이 되셨다고  하셨다.




시인이 되셨던 아주머님이 께서
꽃피면 찾아오라던
그 화려한  돌배꽃을  보려고  몇 차례  
찾아보았지만  
내 복에  이 돌배꽃을 보는
복은 부족했는지
허락하지 않더니...










이 날은  복이 들은 날인지
약 90% 가까이 돌배꽃이
핀 모습을 보는
복을  허락한 날이다.

너~~~ 무 이쁘다,
정~~~ 말   아름답다.